* 건슬링거걸 AU
* 일전에 썼던 건슬링거걸 AU(황립, 자목1, 자목2)와 설정을 공유합니다.
* 의체 및 공사에 대한 설정이 원작과 완벽히 일치하지는 않습니다.
사회복지공사의 사람들은 크기와 중요성에 관계없이 제각기 어떠한 사연을 갖고 있었다. 물론 의체 또한 그 범주에 포함되었다. 때문에 공사에서는 바깥의 사람들 마냥 평범한 과거를 가진 이들을 찾는 것이 더 힘들 정도였다. 공사에 근무하는 어느 누군가는 공사의 그런 상황을 빗대어 평범한 사람들이 공사의 멸종 위기종이 아닐까 하는 우스갯소리를 늘어놓기도 했다.
그리고 마유즈미 치히로는, 공사에서 몇 안 되는 평범한 인간 중의 한 명에 속했다.
* * *
마유즈미는 그의 팀에 있는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공사에 한참 늦게 들어온 편이었다. 의사인 미부치 레오는 올해로 공사에서 근무한 지 5년차였고, 기술관인 하야마는 미부치보다는 짧아도 마유즈미보다는 한참 긴 3년 10개월 차라고 했다. 그에 반해 마유즈미는 이제 갓 6개월을 채웠을 뿐이다.
대체 내가 어째서 이런 팀에 들어오게 된 건지 말이야. 새삼스럽게 그의 동료들과 그 사이의 차이점을 짚어보던 마유즈미가 이마에 손을 얹었다. 게다가 그의 팀은 다른 팀들과는 구성 요소도 조금씩 달랐다. 다른 팀에는 있는 담당관이 이 팀에는 없는 대신, 연구원이라는 직책이 그 자리를 메꿨다. 그 연구원이 바로 마유즈미 치히로, 본인이었다.
그는 의체에 대한 여러 가지 실험 자료가 적힌 차트를 휙휙 넘겼다. 이 차트에 있는 것들 대부분이 그가 하는 일과 관련되어 있었다. 의체의 악력 한계, 전반적인 신체 강도, 유연성의 정도, 그 밖에도 수많은 데이터들. 요약하자면 그는 기존의 의체를 보다 더 새롭게 개량하는 일을 담당하고 있다. 이미 공사는 첫 번째 세대의 의체-1기생-와, 두 번째 세대의 의체-2기생-를 보유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한 단계 더 향상된 의체를 원했다. 마유즈미가 고용된 것은 그 이유에서였다.
그는 차트에 손으로 기록해둔 데이터를 모두 컴퓨터로 옮겨두었다. 이 자료들은 차후 의체의 신체 부위들을 새로이 설계할 때 쓰일 예정이다. 빼곡하게 들어찬 전문 용어들과 숫자들의 나열을 정확히 두 번 훑고, 마유즈미는 모니터의 전원을 껐다. 저장은 끄기 전에 마쳤으니 자료가 날아갈 리도 없다. 삐걱대는 등받이를 지지대 삼아 마유즈미는 크게 기지개를 켰다.
젖힌 고개 너머로 기술관인 하야마 코타로가 들어오는 게 보였다. 마유즈미 씨, 그 의자 약한데. 눈이 마주치자 하야마가 인사 대신 그런 말부터 툭 던졌다. 난 균형 잘 잡으니까 괜찮아. 그는 어깨를 으쓱이곤 하야마가 들고 있는 물건에 눈길을 주었다. 모양새는 어디로 보나 의체의 팔이다. 하지만 어깨와 연결되는 부위에 전선이 들쭉날쭉 나와 있는 걸 보아하니, 망가진 부품일 가능성이 높아졌다.
“설마 또 망가졌냐?”
젖힌 몸을 다시 제대로 돌려놓고 앉은 마유즈미가 물었다. 하야마는 그 팔을 던지듯 마유즈미의 품에 넘겨주며 그렇다고 했다. 제대로 만들었다면서 왜 망가져요? 볼멘소리가 뒤따라왔다. 마유즈미는 그의 품에 놓인 한 쪽 팔을 요모조모 뜯어보다, 고장의 원인으로 보이는 부분을 찾고는 고개를 두 번 정도 가로저었다.
“손목과 팔꿈치는 다 완성됐다고 했지만, 어깨 관절은 아직 약하다고 했었어. 너무 무리하게 시킨 거 아냐? 이번엔 내가 바빠서 테스트에 못 갔더니 바로 이렇게 부숴먹고 오는 건 어디의 친절인데, 어?”
“마유즈미 씨, 어깨 얘기는 안 했잖아! 난 들은 기억 없다고!”
“세 번이나 말했다, 세 번이나.”
꽤 억울한 표정의 하야마를 보며 긴 한숨을 내쉰 마유즈미는 팔의 주인이 어디에 있느냐 물었다. 레오 누님이 보고 있을 거야. 하야마가 조금 침울해진 기색으로 대답했다. 넌 다녀와서 보자. 팔을 쥔 채로 나가려던 마유즈미가 마지막으로 내뱉은 말에, 하야마의 표정이 순식간에 절망적으로 변했다. 하야마가 가장 싫어하는 것 중하나가 마유즈미의 설교인 까닭이다.
등 뒤에서 자신을 부르는 하야마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그는 그들의 팀에게 배정된 연구실로 향했다. 하야마와 미부치가 기본적인 처치는 해 두었을 게 분명하지만, 그들의 의체는 다른 의체들과는 달리 섬세하게 다룰 필요가 있었다. 이번에는 또 얼마나 밤을 새야 되려나. 진심에서 우러나온 한숨이 발밑으로 푹푹 꺼졌다.
“…….”
연구실의 상황은 생각보다도 더 가관이었다. 망가지거나 부서진 장비들이 없는 것은 정말로 다행이지만―.
“그래서 어떻게 된 일인데.”
“…마유즈미 씨.”
아무래도 그가 없는 사이 연구실에서는 꽤나 큰 일이 일어난 모양이었다. 팔이 뜯겨나간 자리가 평소보다도 흉측하다. 애초에 이렇게 팔이 뜯겼던 적은 한 번인가 두 번 밖에 없기는 했지만, 그 때보다도 더 심하다는 얘기다. 철제 침대에 눈을 감고 조용히 누워있는 의체―아카시의 얼굴에는 핏기조차 사라져 있었다.
“이전에는 그냥 탈골에서 끝났었잖아. 저번에는 뼈가 살을 뚫고 나오긴 했지만 이렇게 찢어지진 않았다고.”
“미안해요, 마유즈미 씨. 평소랑 똑같이 진행했는데… 아카시가 폭주하는 바람에 어쩔 수가 없었어요.”
“폭주?”
“마유즈미 씨는 아직 직접 본 적은 없죠?”
그간 하야마와 미부치에게 듣기만 했던 이야기라, 마유즈미는 짜증 내던 것을 잠시 멈추고 미부치의 말을 들어보기로 했다.
“전에도 말했지만, 아카시에게는 두 개의 인격이 있어요. 담당관이 있었을 시절의 아카시와, 지금의 아카시.”
“그래, 그건 저번에 말해줘서 알고 있어. 담당관이 있었을 때의 아카시는 지금보다도 온화했다는 사실도 기억하고 있고.”
“거기까지 알고 있으면 얘기가 편하겠네요. 온화한 아카시는 마유즈미 씨가 알고 있는 아카시보다, 어떠한 상황을 견딜 수 있는 역치가 정말로 낮아요. 지금의 아카시는 그렇지 않지만……. 그래서 온화한 아카시가 나올 때면, 거의 항상 이렇게 되어버리곤 해요. 담당관이 있었다는 건 기억하지 못한다고 해도, 담당관을 잃은 충격은 무의식중에도 기억하고 있어서―,”
“잠깐, …아카시가 깼네.”
무언가를 더 말하려던 미부치를 마유즈미가 막았다.
“……치히로?”
마유즈미는 눈을 아주 살짝 찌푸렸다. 저 아카시는 지금 듣고 있던 온화한 아카시가 아닌, 그가 알고 있는 아카시다.
“그래, 아카시. 몸은 어때?”
“아파. ……레오는?”
“나도 여기 있어. …미안해, 많이 아프지?”
“이런 건 금방 나을 테니까 괜찮아. 그보다, 이번에는 얼마나 해야 하지?”
한 쪽 팔이 없는 채로 누운 아카시가 물었다. 주어가 생략된 물음이었지만 마유즈미와 미부치는 그것이 무엇을 가리키고 있는지 이미 알고 있었다. 아카시가 묻는 것은 조건강화를 얼마나 해야 하느냐, 였다.
“약 10퍼센트 정도. 기억에는 손상이 가지 않게 할 테니 걱정하지 마.”
미부치가 손을 뻗어 달래듯 아카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마유즈미는 그런 미부치를 보다, 잠시 아카시와 이야기를 할 시간을 달라며 그를 바깥으로 내보냈다. 아카시가 아프대잖아요! 진통제 주사할 거니까 걱정 마. 말끔하게 수리한 뒤에 부를 테니까. 그런 말과 함께 그는 문을 닫았다.
“치히로, 난 괜찮아. 아픈 건 참을 수 있고.”
“괜찮은지 아닌지는 내가 정해. 의사는 아니다만, 어쨌거나 네 몸의 반 이상을 개량한 건 나니까.”
“…….”
“그 전에 묻고 싶은 게 하나 있는데, 아카시.”
마유즈미는 의자를 끌어다 아카시가 누워있는 침대 옆에 앉았다.
“도대체 뭘 봤기에, 팔이 뜯겨 나갈 정도로 날뛴 거야?”
“치히로는 말해도 모를 거야. 그냥 수리해줘. 치히로에겐 말 안 할 거니까. 치히로는… 몰랐으면 좋겠어.”
아카시는 망설이지 않고 대답한 다음 그대로 눈을 감았다. 그건 마유즈미가 불러도 더 대답하지 않겠다는 표시와도 같아서, 결국 그는 미부치를 내쫓은 보람도 없이 다시 연구실로 불러들였다.
덧붙임
보통의 순간을 쓰려다 적먹 사이드가 보고 싶어서 정리해뒀던 것을 기반으로 써보았습니다.
아카시는 본 AU에서 등장하는 유일한 1기생입니다. 또한 아카시의 설정 모티프는 본작에서 나오는 클라에스에서 따왔습니다. 담당관을 잃고 실험용 의체로 개조된 아카시…와 아카시를 담당하는 팀인 라쿠잔 스타멘들. 네부야는 나오진 않았습니다만 다른 스타멘들과 마찬가지로 공사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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