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슬링거걸 AU
* 일전에 썼던 건슬링거걸 AU 황립(링크)과 설정을 공유합니다
카사마츠 유키오와 키요시 텟페이는 사관학교 시절 선후배 사이였다. 카사마츠 쪽이 키요시 쪽보다 한 기수가 더 높았다. 본래 기수가 다르면 친하게 지낼 일이 거의 없다시피 했지만 두 사람은 예외였다. 사관생도 시절 현장을 미리 겪어보라며 생도들을 차출한 적이 몇 번 있었는데, 그 때에 몇 번 얼굴을 마주치게 되어 알게 된 것이다. 게다가 두 사람은 취미도 같아서, 친해지지 않을 이유는 전혀 없었다.
아마 키요시가 무릎 부상을 이유로 먼저 전역하지 않았더라면 지금까지도 계속 같이 군에 있지 않았을까. 그가 있었다면 자신의 전역에 크게 일조한 문제의 그 사건이 안 일어났을 수도 있고. 그런 생각이 설핏 들었다. 인생에 만약이란 없는 일이지만, 키요시를 생각할 때면 언제나 그러한 가정들이 뒤따라 나왔다. 카사마츠는 짧게 고개를 저으며 발걸음을 조금 더 재촉했다.
“유키오, 왜 이렇게 급하게 가는 검까?”
“그래 보였어?”
“네, 게다가…… 굉장히 기분 좋아 보여요.”
“그런 건 아닌데. 옛날 생각이 좀 나서 그랬나보지.”
“옛날이요?”
옆에서 졸졸 따라오던 키세가 재차 물었다. 카사마츠는 뭐라 대답할까 고민하다, 곧 시야에 잡힌 약속 상대를 보곤 나중에 말해주겠다고 답했다. 치사함다! 작은 항의가 들려왔지만, 카사마츠는 키세의 머리를 한 번 꾹 누르는 것으로 볼멘소리를 잠재웠다. 여전히 투덜거리기는 했지만 큰 소리는 더 이상 나지 않았다.
키요시! 카사마츠가 카페테리아의 야외 테라스에 앉아있는 키 큰 남자를 불렀다. 일행인 듯한 소년이 케이크를 먹는 모습을 지켜보던 얼굴이 카사마츠 쪽으로 빙글 돌았다. 사람 좋은 웃음이 그 위로 둥실 떠올랐다. 카사마츠 선배. 긴 몸이 꾸벅 앞으로 굽었다.
두 남자와 두 의체는 카페테리아의 안으로 자리를 옮겼다. 날이 점차 더워지고 있었다. 테이블 하나를 사이에 두고 앉은 이들 앞으로 얼음을 띄운 음료가 한 잔씩 놓였다. 카사마츠가 산 것들이었다. 키세와 이름 모를 의체(하지만 이름을 들어본 기억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에게는 코코아, 자신과 키요시몫으로는 커피. 바짝 마른 목을 짧게 축인 카사마츠가 천천히 안부를 물었다. 듣기로 키요시 텟페이가 담당하는 의체는 다른 의체들보다도 유달리 멋대로 하는 경향이 강하다 했었다.
“나름대로 잘 지내고 있어요. 얼마 전에 무라사키바라가 크게 다치는 일이 있긴 했지만…… 말끔히 나았고요. 선배는 잘 지내고 계세요?”
그래, 하고 말하려던 찰나 키요시의 의체가 그 타이밍을 빼앗아가버렸다. 의체―무라사키바라의 앞에 놓인 코코아는 어느새 반절 이상 줄어있었다. 조금 전에는 케이크를 먹고 있었던 것 같은데. 단 걸 좋아하는 건가.
“그건 키요시가 잘못해서 다친 거구.”
“하하……, 그 날 서포트를 잘못한 건 확실히 나긴 하지. 하지만, 지금은 움직이는 데 무리는 없지 않아?”
“아직도 아픈데. 키요시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이 기분 나빠지게 하는 말만 골라서 하던 무라시카바라의 얼굴이 확 찌푸려졌다. 조건강화의 효과 중 하나다. 의체는 담당관에게 반하는 행동이나 말을 절대로 할 수 없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도할 때에는 상당히 큰 불쾌감을 느끼게 된다. 지금 무라사키바라가 말을 멈춘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일 것이다.
카사마츠는 눈을 조금 굴렸다. 여전히 그는 웃고 있었지만 곤란하다는 빛이 아주 조금 보였다. 멋대로라는 게 저런 식이었냐. 확실히 저런 의체면 함께 일할 때도 곤란할―
“아프다는 건 거짓말아님까? 우리들은 의체라서 한 번 치료받고 나면 아픈게 남아있지도 않다고요.”
코코아만 쪽쪽 빨아먹고 있던 키세가 무라사키바라를 보았다.
“저랑 같은 세대라고 해서 누군지 기대했는데, 실망했슴다.”
“어디서 그런 같잖은 소릴 하는 거야?”
“유키오가 2기생은 다들 어른스럽다고 했단 말임다. 이렇게 애같은 줄 알았으면 유키오 따라서 안 왔어요.”
카사마츠는 키세가 방금 전 한 말에서 무언가 빠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분명 2기생이 어른스러운 건 외모적인 면에 한정해서, 라고 설명해주었던 것 같은데 어째서 저렇게 자기 좋을 대로만 기억하는지 알 수가 없다. 이걸 정정해줘야 하나. 카사마츠의 미간 사이가 살짝 좁아졌다. 그 와중에도 키세와 무라사키바라는 서로를 향해 공격적인 말들을 내뱉고 있었다.
그렇게 단 걸 좋아하니 어른스럽지 않은 것이라는 둥, 나보다 작은 주제에 어른인 척 하지 말라는 둥, 어찌 보자면 상당히 유치한 말싸움이었으나 그 분위기만큼은 퍽 위협적이었다. 서로 총을 갖고 있었다면 당장에라도 꺼내서 겨누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였으니, 말은 다 한 거다.
서로를 향해 몸을 반쯤 기울여 으르렁대던 두 의체가 잠잠해진 것은 그로부터 조금이 더 지난 뒤였다.
“무라사키바라, 나한테 하는 건 상관없지만 다른 사람들이나 의체들에겐 그러지 말라고 했잖아.”
“먼저 시비건 쪽은 내가 아니라 저쪽인데. 난 들은 대로 해줬을 뿐이야. 키요시, 설마 지금 쟤 편드는 거구?”
“편들고 말고 하는 문제가 아니라, 태도 문제라니까. 무라사키바라, 얼른 사과해.”
“싫어. 난 가만히 있었는데 쟤가 먼저 짜증나게 한 거니까.”
무라사키바라가 손을 뻗어 키세를 가리켰다. 그것에 겨우 잠잠해진 키세가 저도 너 같은 거랑은 사과하기 싫슴다! 하며 고개를 홱 돌렸다.
야, 키세! 카사마츠가 소리친 것과 무라사키바라가 일어나 키세의 옷깃을 틀어쥔 것은 거의 동시였다. 순식간에 카페테리아 안이 소란스러워졌다. 카사마츠는 무라사키바라의 행동 덕분에 엎어진 커피 잔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사과하고 얼른 나가던지 해야지. 키요시를 보니 그 또한 비슷한 생각인 것 같아, 그는 키세의 뒷목 부근을 잡아 그 쪽으로 끌어당겼다.
* * *
키요시와 무라사키바라와 헤어진 이후, 키세는 카사마츠에게 호되게 혼났다. 키세는 왜 그랬느냐는 카사마츠의 다그침에도 한참이나 입을 다물고 있다 그가 결국에는 아무 말도 않고 홀로 화를 삭일 즈음에야 겨우 말문을 텄다.
“이해가 안 돼서 그랬어요.”
“이해라니.”
“저는 유키오가 좋슴다.”
카사마츠는 숨을 한 번 삼켰다. 자신을 보는 키세의 눈이 여느 때보다도 더 반짝였다. 그는 시선을 슬금 다른 쪽으로 돌리며 마저 말하라는 듯 그래, 하고만 답했다.
“그건 다른 의체들도 마찬가지예요. 담당관을 싫어하는 의체는 있을 수가 없다고요. 유키오도 알고 있잖아요?”
“확실히, ……조건강화 덕분이긴 하겠지만. 가끔 조건강화를 넘어 자의로 담당관에게 더 애정을 쏟는 경우도 있다곤 했으니.”
“그러니까 이해가 안 된다는 검다. 결국에는 어떠한 말도 할 수 없을 거면서, 아까도 못 그랬으면서, 겉으로만 그러고 있으니까요.”
카사마츠는 조금 빨라진 걸음을 키세의 보폭에 맞췄다. 의체는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줄줄 말을 이었다.
“제가 보기에 그 녀석은, 그 담당관을 생각보다도 더 많이 좋아하고 있을 거예요. 인정하기 싫어서 저러고 있는 거지. 그치만 그게 주변에 피해를 주니까… 그래서 정신 좀 차리라고 그랬슴다. 정말로 때리지도 않았고.”
키세가 카사마츠를 보며 아주 조금, 씁쓸하게 웃었다.
“우리들은 인간이 아니라 의체니까요. 의체는 담당관이 없으면 존재할 이유가 없슴다. 그래서, 유키오가 좋아요. 그 녀석도 언젠가는 인정하겠죠. 그렇다고 해도 친해질 생각은 저언혀 없지만.”
“키세.”
“뭘 그렇게 침울하게 있어요. 유키오, 저 아이스크림 먹고 싶어여! 아이스크림 사주세요, 아이스크림~”
카사마츠가 그를 부르자마자, 키세는 방금 전 자신이 한 말의 대답은 듣고 싶지 않다는 듯이 황급히 화제를 돌려버렸다. 돌아가면 코보리에게 상담을 요청해볼까…….
덧붙임
자목이 보고 싶어서 썼는데 어쩐지 황립 비중이 높네요…. 무라사키바라도 키세와 마찬가지로 2기생이라는 설정입니다. 코보리는 공사 내에서 심리적인 것들을 담당하는 의사예요. 모리야마랑은 친한 사이.
그리고 무라사키바라도 키세도 모두 담당관을 많이 좋아합니다. 방식은 많이 다르지만요´_`... 무라사키바라는 처음 써보는데... 많이 어렵네요. 다음 연성에서는 조금 더 잘 쓰고 싶습니다. 언젠가 또 이 설정의 연성을 하게 될 기회가 있다면 그 때는 자목의 이야기도 더 풀고 싶고, 황립 쪽의 이야기라던가... 카사마츠와 키요시 이야기도 더 풀고 싶네요. 게다가 아직 쓰고 싶은 페어가 하나 더 남아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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