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함없이 평화로운 날이 될 것이라 여겼던 때가 있었다. 불과 10분 전만 해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뜻밖에도 곤란한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키요시 텟페이는 자신을 쓰러트리고 몸 위에 올라탄, 그보다는 작은 체구의 소년을 보았다. 흘러내린 머리가 반쯤 소년의 얼굴을 가려 아쉽게도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는 확실히 알 수가 없었다.
“다른 생각 하지말구.”
미간 사이로 선뜻함이 기어 올라왔다. 눈을 조금 돌려 확인해보면 검은 총신이 바로 보인다. 소년, 그러니까 의체 무라사키바라가 쥐고 있는 총은 그가 가장 편하게 쓰던 것이다. 담당관을 죽이려고 달려드는 와중에도 무기만큼은 함부로 고르지 않았다. 조건강화는 이런 곳에서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웃지도, 찡그리지도 않은 입술 끝에서부터 이유 모를 씁쓸함이 퍼져갔다.
키요시. 무라사키바라가 빈손을 들어 시야를 가리는 머리를 옆으로 쓸어 넘겼다. 덕분에 얼굴이 훤히 보이게 됐다. 그래, 무라사키바라. 키요시는 천천히 대답했다. 아직 방아쇠에 손가락이 걸리지 않았다. 말로 잘 달랜다면 미간에 닿아있는 총구를 치우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당신 지금 무슨 생각 하는지 다 보여. 나 어떻게 떼어낼까 생각하고 있잖아.”
“거짓말을 할 수가 없네, 네 앞에서는.”
“키요시를 가장 많이 봐 온 게 누구라고 생각해?”
당연히 너겠지. 그러나 대답은 소리가 채 되지 못했다. 키요시 텟페이가 보고 있는 끝으로, 무라사키바라의 오른손 검지가 방아쇠에 걸렸다. 그는 더 이상 대답할 이유가 없다고 느꼈다. 지금 이 행동은 조건강화의 부작용으로 나온 발작이다. 발작의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서는 알고 있으나, 키요시는 자신이 그 문제를 결코 해결할 수 없을 것이라 판단했다.
애초, 인간과 의체다. 관리자와 병기다. 같은 일을 할 수는 있어도 공존할 수는 없다. 의체의 담당관이 되겠다고 결정했을 때부터 친구인 휴가에게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던 말이다. 들을 당시에는 설마 그럴 일이 있겠느냐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역시 사람 말은 무엇이든 기억하고 볼 일이다.
“나는 키요시가……,”
무라사키바라가 몇 번이고 하려다 실패한 말을 또 했다. 이번에도 하지 못하면 열 번째다. 언제나 풀려있던 얼굴이 차츰차츰 일그러져갔다. 무라사키바라는 무언의 말을 숨과 함께 토했다. 막혀서 나오지 않는 것을 억지로 쥐어 짜내는 모양새였다. 불편한 침묵이 이어졌다.
총을 쥔 손에 조금 더 힘이 들어갔다. 이대로 빗나가서 정말 쏘아버리는 일만 생기지 않았으면 하는데. 키요시는 손가락 하나조차도 움직이지 않은 채로, 그저 조용히 무라사키바라를 시야에 담았다. 그는 무라사키바라가 총을 겨눈 그 때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눈을 돌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 사실이, 무라사키바라를 조금 더 화가 나게 했다.
“…당신.”
“…….”
“――――싫구.”
무라사키바라가 총을 내팽개치며 허겁지겁 몸을 일으켰다. 그토록 하고 싶어 하던 말을 한 것 치고는 영 볼품없는 움직임이다. 조건강화의 부작용 때문이겠지. 키요시는 누르고 있던 것이 사라진 미간 사이를 손끝으로 몇 번 매만지다, 그 손을 코 쪽으로 내렸다. 아직도 총구에 들러붙어있던 죽음의 냄새가 나는 듯 했다.
방 한 쪽에 딸려 있는 욕실에서는 구역질을 하는 소리가 컸다. 키요시는 바닥에 덩그러니 놓인 총을 집어 들어 탄창을 뺐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손에 들린 탄창은 꽤나 가벼웠다. 그는 탄창을 확인했다.
……탄창은 비어있었다.
한참이나 빈 탄창을 보며 골똘히 생각에 잠겨있던 키요시는 얼마 지나지 않아 총을 다시 본래대로의 모습으로 조립해 두었다. 그리고는 욕실로 다가가 닫힌 문을 정확히 세 번 두드렸다.
“진정되면 말해. 휴가에겐 찾아간다고 미리 말해둘 테니까.”
안 갈 거야, 하는 말이 몇 번에 걸쳐 나눠 들렸다.
“그래, 하지만 가야해. 만약 오늘 일로 네게 이상이 생긴다면 여러모로 곤란해지거든.”
문 너머로 쿵, 큰 파동이 왔다. 말 대신 행동을 택한 것이다. 키요시는 그것에 더 이상 반응하지 않고, 핸드폰을 꺼내 친구이자 공사 소속의 의사인 휴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휴가, 안 바쁘지? 한 시간 쯤 뒤에 무라사키바라랑 찾아갈게. 미리 말해두자면 오늘은 상담이 좀 길어질지도 모르겠다.]
덧붙임
이 장면을 쓰고 싶었습니다. 어른과 영원히 자라지 못할 소년의 차이가 좋아요.
그리고 휴가는 정신과 쪽 의사입니다. 주로 의체들의 상담을 진행하는...? 무라사키바라가 키요시와 더불어 가장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사람 중 하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