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거리 연애는 힘들대. 언젠가 미부치 레오가 그랬다. 교토의 라쿠잔에서 2년은 더 있어야 하는 아카시 세이쥬로와 도쿄의 대학으로 진학하는 마유즈미 치히로의 연애 사실을 알고 난 직후였다. 그리고 그 말에 아카시 세이쥬로는 괜찮다는 말로, 마유즈미 치히로는 아카시를 제외한 3D에는 관심이 없다는 말로 걱정을 일축시켰다. 비록 그 말을 하고 난 뒤 다른 레귤러들에게서 오는 시선이 영 마음에 들지 않기는 했지만 말이다.
여름이 다가올 즈음, 마유즈미는 미부치의 말을 조금 더 귀담아 듣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적어도 장거리 연애가 왜 힘든지에 대해서는 물어볼 걸 그랬다. 물론 연락이야 할 수 있지만 어쩐지 그것은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았다. 게다가 번호는 있어도 개인적인 연락을 할 만큼 친한 사이도 아니었고. 굳이 말하자면 도구로 이용당한 것에 가까웠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마유즈미는 핸드폰의 메일함을 열었다. 아카시와 메일을 주고받은 것이 벌써 이주일 전이다. 마지막의 메일에서 당분간 바쁠 거라는 말은 똑똑히 봐 두었지만, 그렇다고 이렇게까지 연락이 안 될 줄은 몰랐다. 물론 그 기간 중에도 마유즈미 쪽에서 몇 번 메일을 보낸 적은 있지만 매정하게도 답장은 오지 않았다.
그래도 한 번 더 보내볼까. 답장이 올지 누가 알아. 마유즈미는 액정 위로 손가락을 놀리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너무 기다리게 하지마, 도련님. 평소에는 쓰지도 않는 호칭까지 붙여가며 문장을 완성한 뒤, 그는 잠시 이 메일을 보내도 좋은가에 대해 고민했다. 그러다 무슨 좋은 생각이 떠올랐는지, 마유즈미는 도련님이라는 호칭을 지우기는커녕 뒤에 몇 글자를 더 덧붙인 뒤 메일을 보냈다.
마유즈미 치히로가 만족스럽다는 듯 웃었다. 이내 그는 핸드폰을 침대 위에 적당히 던져두고, 오늘 갓 사온 라노베를 읽기 위해 책상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 * *
《너무 기다리게 하지마, 도련님. 확 바람피워버린다.》
농구부의 연습을 끝내고 핸드폰을 확인한 아카시 세이쥬로의 얼굴에 당혹스러움이 떠올랐다. 세이쨩? 근처에서 유니폼을 갈아입고 있던 미부치 레오가 아무 말 없이 행동을 멈춘 아카시를 부르며 그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뭘 봤기에 그래? 옆에서 손이 튀어나와 아카시의 핸드폰을 뺏어갔다.
“어머, 바람?”
그 말에 하야마와 네부야까지 두 사람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레오 누님이 바람 폈어? 풀짝 뛰듯 다가온 하야마가 물었다.
“세이쨩 애인 있잖아, 애인!”
“아, 그… 마유… 뭐였지?!”
“마유즈미 치히로다, 코타로. 기억 정도는 하고 있어.”
“그치만, 내가 사귀는 것도 아닌데!”
네부야와 하야마의 대화가 점차 평온하기보다는 투닥거림으로 변모해갈 즈음, 미부치는 아카시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여주며 달래듯 말을 꺼냈다.
“이래서 장거리 연애는 힘들다고 했잖니.”
“문제는 없다고 생각했어. 바쁘다고 사정 설명도 했고, 마유즈미 선배도 괜찮다고 했으니까.”
“괜찮다고 했어?”
“응, 이해해 준다고도 했어.”
세이쨩. 잠시 조용하던 미부치가 한 박자 늦게 말을 꺼냈다. 연락, 언제 했니? ……마지막 연락이 2주일 전이었네. 그러자 미부치는 물론, 하야마와 네부야마저 꽤 놀랐다는 모습으로 아카시를 보았다. 애인이라며? 바쁘다고 했으니 괜찮을 줄 알았어. 아카시는 똑같은 대답을 한 번 더 말했다. 그 대답을 들은 하야마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미부치가 들고 있던 핸드폰을 다시금 아카시에게 쥐어주었다.
“난 레오 누님처럼 그렇게 연애에 빠삭하진 않고 그 마유즈미 치히로라는 사람에 대해서도 잘 모르긴 하지만…… 그래도 2주는 너무하지 않냐! 진짜 바람 피워도 할 말 없는 기간인데?!”
“하지만 바람을 피우진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마유즈미 선배는…….”
“만약이 사람 잡는다, 세이쨩?”
그 말과 함께 네부야가 달력을 흘끔 보곤 말했다
“금요일이네. 규동 먹기 좋은 날이지.”
“세이쨩은 도쿄에 가란 거지, 그거?”
“그럼 내일 연습은 하루 쉬나? 아카시가 없어도 연습은 잘 하겠지만~”
하야마의 말을 시작으로 희망사항을 줄줄 내뱉던 세 사람의 말이 어느 정도 줄어들었을 무렵, 아카시 세이쥬로가 짧게 웃으며 상황을 끝맺었다.
“감독님에게 말해둘게. 내일 하루만 나 없이 연습하도록 해.”
* * *
책을 든 채로 반쯤 졸고 있던 마유즈미의 잠을 깨운 것은 침대 위에서 시끄럽게도 울려대고 있는 핸드폰이었다. 손에서 미끄러지기 직전인 라노베를 책상에 얌전히 두고, 그는 나른하게 하품하며 핸드폰을 들어 누구에게서 온 전화인지를 확인했다. 그리고 그 직후, 마유즈미는 그를 덮쳐오던 수마가 한순간에 사라지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아카시 세이쥬로. 지금도 울려대는 전화의 발신인은 그보다 두 살 어린 애인이다. 그는 전화를 받기 전에 지금이 몇 시인지를 확인했다. 문제의 메일을 보낸 때로부터 약 다섯 시간이 지난 때였다. 이주일 동안 연락 안 한 거치고, 반응 한 번 빠르네.
“그래.”
[마유즈미 선배, 지금 어디에 계시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들려오는 목소리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평온하다. 마유즈미는 어떤 대답을 하면 좋을지, 머릿속으로 선택지를 늘어놓았다. 미연시 아닌 미연시를 하는 거 같은데, 이거. 잘못 선택하면 호감도가 깎인다거나 하는 건 아니겠지?
[선배, 대답 안 해주실 건가요?]
침묵이 조금 길었는지 수화기 저편에서 조금 재촉하는 말이 들린다. 마유즈미는 기왕 조금 더 조용히 있기로 했다. 어디까지 나오나 보자, 싶기도 했고.
[……마유즈미 선배, 자취방에 계신 거 알고 있습니다.]
“교토에 있는 녀석이 잘도 확신한다.”
[지금은 교토가 아니니까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유즈미 치히로의 머릿속으로 하나의 예감이 스쳐갔다.
“설마 너,”
딩동. 초인종 소리가 말을 끊고 울렸다. 마유즈미는 전화를 끊지 않은 채로 현관 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는 문의 잠금쇠를 풀기 직전에, 다시금 물었다.
“너냐?”
[네, 저예요. 선배.]
그는 문을 열었다. 그러자 그 너머로 핸드폰을 들고 서 있는 아카시 세이쥬로가 나타났다. 통화는 그제야 끊겼고, 아카시는 말을 잃고 서 있는 마유즈미를 향해 부드럽게 웃으며 물었다.
“그래서, 누구랑 바람을 피우신다고요?”
……이걸 어쩌냐.
마유즈미 치히로는 생각지도 못했던 상황에 눈앞이 일순간 깜깜해졌다.
오리찡을 위한 적먹.
인데 과연 말투나 성격이 잘 써졌는지는... 모르겠지만 T_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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