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의 다른 의체들과는 달리, 아카시는 그와 가장 가까이 지내는 팀원들에게도 거리를 두었다. 하지만 그 사실에는 예외가 하나 있었는데, 바로 연구원인 마유즈미다.
아카시가 유달리 마유즈미를 따르는 것을 보며, 다른 팀원들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도 그럴 것이 마유즈미는 아카시를 담당하는 팀에 가장 늦게 들어온 사람이었던 것이다. 마유즈미가 공사에 들어온 것은 고작 6개월 째였고, 다른 팀원들은 그 배는 더 됐다.
하루는 미부치가 물었다. 그는 아카시를 심리적인 면을 담당하는 의사로, 아카시를 담당한지는 5년 째였다.
"마유즈미 씨, 아카시의 마음을 사로잡은 특별한 비결이라도 있어?"
책을 읽다 들려온 뜻밖의 질문에 그는 무슨 말을 하냐는 듯 미부치를 보았다.
"아카시가 마유즈미 씨만 졸졸 따라다니.. 아니, 그건 아니지만, 그래도 마유즈미 씨를 가장 좋아하는 게 눈에 보이는걸."
마유즈미는 잠시 눈을 깜박댔다. 걔가 날 특별히 좋아한다고 생각해본적은 없는데. 그러나 그리 말하면 미부치가 도끼눈을 하고 볼터다. 그래서 마유즈미는 아카시와 자신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 고민했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찾을 수가 없었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가서 데이터만 뽑고, 몸 상태를 체크하는 것이 전부니까.
한참을 고민하던 그는 결국 미부치에게 잘 모르겠다고 대답해버렸다.
"그게 뭐야, 마유즈미 씨~!"
"생각나는 게 진짜 없어. 그나저나 용건 끝났으면 가본다. 아카시 체크할 시간이라서."
그리 말하며 마유즈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간이 도와줘서 다행이었다. 그게 아니었다면 꼼짝없이 붙잡혀서 한 시간은 넘게 있어야 했겠지.
오늘도 아카시는 의자에 얌전히 앉아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유즈미는 차트를 보다 말고 아카시에게로 눈을 돌려, 미부치의 말을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내 앞에서는 원래 이랬으니 다르고 말고 할 게 없잖아? 덕분에 아카시의 앞에서 잠시 한눈을 팔았다.
"치히로."
어린애 특유의 높은 목소리가 그를 불렀다. 마유즈미는 그 부름에 조금 늦게 반응했다.
"어."
"오늘은 무슨 생각을 하기에 그렇게 정신을 놓고 있는 거야?"
"그럴 일이 있어서."
"무슨 일?"
"그냥 그런 게 있어."
"듣고 싶어."
마유즈미가 아카시를 보았다.
"…왜?"
그렇게 반문하자 도리어 아카시가 조금 이상하다는 듯 마유즈미에게 말했다.
"치히로는 내 거니까. 내가 내 거에 대해서 알고 싶다는 거에 이유가 있어? 애초에 치히로가 여기 온 건 나랑 있어주기 위해서잖아. 그래서 치히로가 하는 일에도 어울려준거고. 그러니까 치히로, 말해. 무슨 생각을 한 거야?"
마유즈미는 그만 할 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의체의 생각은 정말이지 이해를 하려 해도 할 수가 없었다.
아카시 세이쥬로와 마유즈미 치히로가 모두 20대에 접어든 이후, 두 사람은 1년에 한 번씩은 꼭 함께 여행을 갔다. 겨울이 될 때도 있었고, 봄이 될 때도 있었는데, 올해는 가을이었다.
게다가 올해의 목적지는 교토. 두 사람의 모교인 라쿠잔이 있는 곳이다. 마유즈미는 창가쪽 좌석에 앉아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바깥 풍경을 보며 교토로 가는 것이 얼마만이더라, 하고 날짜를 헤아렸다. 그의 가족들은 교토에 있지만, 그는 학교와 직장을 모두 도쿄에 구해버린 까닭에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로는 고향에 몇 번 찾아가지도 못했던 것이다.
마유즈미 씨. 옆에 앉은 아카시가 그를 불렀다. 아카시는 그가 대학생이 된 다음부터, 선배 대신 씨 라는 호칭을 성 뒤에 붙여 불렀다. 차라리 선배가 더 나을 것 같지 않냐. 그렇게 말해보기도 했지만, 아카시는 고개를 저었다. 이쪽이 제가 더 편해요. 가끔 마유즈미 씨를 이름으로 부르는 때도 있겠지만…….
교토에 가는 건 오랜만이죠. 평이한 목소리가 질문을 해왔다. 마유즈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만이지? 마유즈미 씨나, 저나, 년 단위예요. 그랬던가. 그는 신칸센에 타기 전에 샀던 음료수의 뚜껑을 열어 가볍게 목을 축였다. 아카시의 눈이 제 손끝에 와 닿았다. 그는 손을 비스듬히 틀어 그 시선을 반쯤 떨궈냈다. 그렇게 보고 있지만 말고,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하라니까. 마유즈미가 무심한듯 툭 내뱉었다.
사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로 처음 가는 겁니다. 담담한 말에 오히려 마유즈미가 놀란 목소리로 되물었다. 뭐? 아버지와 사이가 나쁘다는 건 아니니 걱정하실 필요는 없어요. 그러니까… 일종의 결심같은 겁니다. 마유즈미는 아주 약간 벌어져 있던 입을 다물었다. 저 녀석은 가끔, 일반인의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생각을 한단 말이지. 한숨이 조금 나왔다.
결국 마유즈미는 더 묻지 않았다. 대신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주고, 자신을 보는 아카시에게 여행이나 잘 하고 오자며 어깨를 한 번 으쓱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