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셉션 AU
* 원작 기반 10년 후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 글의 주요 소재 및 전개 방식은 영화 《인셉션》에서 차용하여, 취향대로 가공하였습니다.
겨울이라 그런지 아직 저녁 시간이 되지 않았는데도 하늘은 벌써 어두워지고 있었다. 그는 입김을 하얗게 쏘아내며 건물 바로 옆에 있는 차로 향했다. 가는 길에는 저녁이라도 사갈까. 별 영양가 없는 생각들이 그의 발밑으로 하나 둘씩 늘어졌다.
카이조 고등학교. 농구부. 주장. 그리고 다른 멤버들. 그는 핸들을 잡고 운전을 하면서도 계속해서 그에 대한 사실들을 떠올렸다. 분명 무언가를 떠올리기 위해서는 그것들을 한데 묶어 어떠한 관련성이라도 생각해내야 하는데, 야속하게도 자신은 어떠한 사실조차 기억해내지 못했다.
내가 그 학교를 다닌 게 맞기는 한가? 그런 의문이 슬그머니 피었다. 고등학교를 다녔다는 이야기만 들었을 뿐, 그것을 직접 눈으로 확인한 적도 없다. 물론 그 자신이 증거를 보여 달라고 한 적은 없지만, 이런 이야기가 나온 시점이라면 말하지 않아도 사실을 확인시켜주는 게 먼저 아니었던가. 그의 체온으로 조금은 따뜻해진 핸들 위로 한숨이 미끄러졌다.
그러다 보니 저녁 생각이 싹 사라졌다. 결국 그는 저녁을 사러 들렀던 편의점에서 도시락 대신 맥주 한 번들과 안주 몇 개를 샀다. 활동 기간 중이라면 입에도 대지 않았을 것들이었지만, 어차피 지금은 쉬는 때이기도 하니 별 상관도 없다. 게다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저 술이 마시고 싶었다.
그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씻고, 책상 앞에 앉아 컴퓨터를 켰다. 곧 모니터가 훤하게 밝았다. 비닐봉투 안에서 맥주 한 캔과 과자 한 봉지를 꺼냈다. 캔에서 김이 빠지는 소리가 제법 크게 났다.
알싸한 액체를 목 뒤로 연신 삼키며, 그는 인터넷에 카이조 고등학교를 검색했다. 학교의 홈페이지와 함께 이런저런 지역 신문의 기사가 화면을 가득 채웠다. 무엇부터 보는 게 좋을까. 그는 손가락으로 마우스 위를 톡톡 쳤다.
그러다 곧 가장 처음으로 어떤 것을 볼지 결정한 그의 손이 바삐 움직였다. 창 하나가 새로이 뜨며 화면이 조금 바뀌었다.
조금이라도 뭔가 생각나면 좋을 텐데. 키세는 그런 생각을 하며 바뀐 화면에 시선을 고정했다.
* * *
키세는 자신에게 온 메일을 확인했다. 내용은 간단했다. 카사마츠 유키오. 몇 번 들었던, 그리고 옛 농구 잡지에 실린 기사에서 보았던 이름 아래에 쓰인 전화번호가 전부였다.
전화를 하면 뭘 이야기해야 하지. 그는 드물게도 그런 것을 고민했다. 아주 모르는 사람이라면 그냥 평범하게 전화를 걸고 약속을 잡은 다음 바로 끊어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퍽 특이했다. 자신은 상대를 모르지만, 상대는 자신을 알고 있다. 그것도, 자신이 모르는 때의 자신을.
그것이 지금 키세 료타가 행동을 망설이고 있는 이유였다.
그는 책상에 놓인 맥주 캔을 들어 단번에 홀짝 마셨다. 김이 반 이상 빠진 맥주는 별 맛이 없었지만 단순히 목을 축일 정도는 되었다.
키세는 조금 전에 보았던 옛 잡지 기사 하나를 떠올렸다. 지금 그가 연락을 해야 하는 상대에 대한 것이었다. 카이조 고등학교 농구부의 뛰어난 포인트가드, 카사마츠 유키오. 기사의 가장 위에 적혀 있던 말을 다시금 되뇌었다. 그 기사에는 사진도 함께 실려 있었는데,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사진을 보고서도 키세는 어떤 것도 떠올리지 못했다.
도리어 그의 사진을 보고, 저 사람과 자신이 아는 사이였다고? 하는 의문이 생겨버렸다. 아무리 보아도 자신과는 하나도 맞지 않을 것 같았던 탓이다. 맞기는커녕 삐걱대거나 하지 않았을까. ……모르겠다. 키세는 의자의 등받이 뒤로 몸을 한껏 젖혔다. 더 미루지 말고 연락, 해야지.
키세의 손에서 한동안 몇 번이고 구르던 휴대폰이 곧 제 역할을 다하기 위해 화면에 빛을 띄웠다. 그는 조금 전에 기억해 둔 번호를 화면 위로 꾹꾹 눌렀다. 기억하고 있는 것과 똑같은 번호가 화면 위로 떠올랐다. 심호흡을 한 번 했다.
통화 버튼을 누르고, 휴대폰을 귀에 댔다. 기본 연결음이 단조롭게 이어졌다. 그는 상대가 전화를 받기를 기다리며 눈을 도르륵 굴렸다. 그러다 문득 시계에 눈이 멎었고, 지금 시간이 전화를 걸기에는 퍽 늦은 때라는 것을 뒤늦게 알아챘다. 끊고 그냥 나중에 연락하겠다고 메일을 보내두는 편이 좋을 지도.
그렇게 생각하고 휴대폰을 귀에서 떼어놓으려던 찰나, 연결음이 뚝 끊어졌다. 전화를 받을 수 없다는 알림인가, 아니면…….
[……여보세요?]
정말 자던 중에 일어나 전화를 받은 건지 한껏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저 너머에서 들려왔다. 키세는 순간 숨을 한 번 삼켰다.
[누구십니까.]
키세가 잠시 할 말을 잃고 침묵한 사이 건너편의 상대가 다시금 말했다. 대답 안 하시면 끊겠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제야 퍼뜩 정신을 차리고 목을 한 번 가다듬었다.
“카사마츠 유키오 씨 되세요?”
[예. 제가 본인인데 누구시죠.]
“늦은 시간에 연락드려 죄송합니다. ……키세 료타입니다.”
[…….]
이번에는 저편에서 숨을 크게 들이마시는 소리가 났다. 자신이 직접 전화를 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것 같았다. 그는 잠시 고민했다. 평소의 자신이라면 상대방이 어떤 반응을 보이던 그의 용건만 간단히 전달하고 전화를 바로 끊었을 텐데, 지금은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렇게 하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래서 키세는 기다렸다. 조금 거칠어진 상대방의 숨소리가 진정되고 제 말에 어떠한 대답을 내놓을 때까지.
건너편에서 대답이 들려온 것은 키세가 그렇게 생각하고, 조금 더 편하게 앉은 직후였다. 그는 다리를 꼬아 앉으며 상대방―카사마츠 유키오가 어떤 말을 할지 두엇 추측해 보았다. 단순히 예, 하는 싱거운 반응일 것이냐, 아니면 떨리는 목소리로 할 말조차 제대로 내뱉지 못하는 반응일 것이냐. 키세는 휴대폰의 마이크에 잡히지 않을 정도로만 작게 목을 울렸다.
[아, 죄송합니다. ……이 시간에 연락이 올 것이라곤 생각도 못 해서. 기다리게 했다면 사과하겠습니다.]
그러던 와중 대답이 길게 이어졌다. 아쉽게도 전자의 반응이었다. 후자 쪽이라면 무언가 조금 흥미가 생기지 않을까, 했는데. 그러나 그는 아쉬운 기색을 내보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대답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그렇게 오래 기다린 것도 아니니까 괜찮아요. 그래서…… 지금 전화 괜찮으세요?”
[그렇게 길지만 않다면요. 내일은 일찍 일어나야 하니, 가능하다면 간단하게 부탁드립니다.]
“그럼…… 최대한 간단하게 해 볼게요.”
키세는 근처에 두었던 종이 하나를 집어 들었다. 종이 위에는 날짜 몇 개와 함께 장소에 대한 설명이 간단히 쓰여 있었다. 결국 날짜는 언제로 정했더라. 그는 종이 위를 눈으로 주욱 훑어보았다.
“만날 날짜와 장소에 관해서인데요. 최대한 빨리 알려달라고 했다던 말을 전해 들어서요.”
[그랬죠. 저희도 쉬는 날을 맞춰야 하니까.]
“……그래서 날짜를 둘로 좁혀봤어요. 하나는 2주 뒤의 금요일과 토요일이고, 다른 하나는 3주 뒤의 주말입니다.”
[금요일과 토요일…… 애매하지 않습니까?]
“그 주 일요일에는 제가 따로 일정이 있어서. 그러니 두 가지를 알려드린 거예요. 의논하시고 연락은 저나 누나 쪽으로……,”
그는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날짜는 자신이 정하고 통보한다고 말해뒀으니, 그 연락을 굳이 그녀에게 하라고 말할 필요는 없다. 흐렸던 말끝을 잡아 다시 온전하게 말을 끝냈다.
“아니, 연락은 저한테 해주세요. 그 편이 더 빠를 겁니다.”
[날짜는 그렇게 하고, 장소는 어디입니까?]
자신이 대답을 망설이는 사이, 그는 다시 졸려오기라도 했는지 빠르게 다음의 용건을 말했다. 그래, 지금 밤이었지. 키세는 종이 위에 적힌 장소를 재차 확인했다. 그런데 이건, 정확한 위치가 아니라……. 키세의 눈이 조금 찌푸려졌다.
“이건 제 쪽에서 물어봐야 할 것 같은데…….”
[네?]
조금은 어이없다는 뜻을 담은 목소리가 답을 해왔다. 그는 황급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카이조 고교 농구부의 합숙 장소, 라고 써있어서요.”
[……아아. 그건 나중에 따로 보내겠습니다.]
“그렇게 해 주면 고맙겠네요. 일단 가장 급한 건 여기까집니다. 뭐 더 궁금한 거 없으세요?”
[…….]
상대방은 다시 조용해졌다. 조금 전에도 기다렸으니, 키세는 이번에도 기다리기로 했다. 무엇인가 정말로 궁금한 게 있는 걸지도 모른다. 대답할 수 있는 것이라면, 뭐, ……노력쯤은 해볼까.
[미리 사과하겠습니다.]
그러나 그는 질문 대신 이유 모를 사과를 건넸다. 네? 하고 반문할 틈새도 없이, 휴대폰에서는 분명히 낯설지만 어딘가 익숙하다는 생각이 드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키세.]
“…….”
[정말, 아무것도 모르겠냐.]
키세는 그 말에 대답하려 입을 벌렸다,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눈만을 굴렸다.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을 해야 하는데 그렇게 대답하면 안 될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덕분에 벌렸던 입은 아무런 소리도 만들어내지 못하고 고스란히 다물렸다. 어째서일까. 허공을 떠돌던 시선이 바닥으로 쿡 처박혔다.
[아무것도…… 아무것도, 안 떠오르냐고.]
말끝이 흔들렸다. 키세는 그것이 왜인지 금방 알아챘다. 물기가 묻어 나오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전화, 끊겠습니다.”
[…….]
“연락은 기다리고 있을게요.”
[그래, 미안… 아니, 죄송합니다. 조만간 다시 연락 하겠습니다.]
“예.”
자신의 대답을 끝으로 통화가 끊겼다는 수신음이 귓전을 울렸다. 그러나 키세는 그 이후로도 한동안 휴대폰을 귀에서 떼어 놓지 못했다. 남자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되풀이 된 까닭이었다.
울음과 비슷한 것을 삼켜내던 것이나, 아무것도 모르겠냐고 묻던 것이나, 전부.
휴대폰을 쥐고 있던 손이 허벅지 위로 툭 떨어졌다. 제법 평온하던 마음이 그 하나에 송두리째 뒤흔들렸다. 중학교를 함께 다녔다던 사람들을 만날 때에는 이런 것들조차 느끼지 못했었는데, 어째서 지금은 이렇게 반응하게 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무엇인가, 기억하는 게 있는 걸까. 복잡한 표정이 키세의 얼굴 위로 한가득 떠올랐다. 이렇게 반응하지만 말고 분명하게 알려주면 좋을 텐데. 그는 처음으로 스스로가 그 어떠한 것도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안타까움을 느꼈다.
그렇게 한동안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던 키세가 다시 휴대폰을 눈앞으로 들어 올렸다. 휴대폰 위에 얹힌 손가락이 바삐 움직여, 메시지 하나를 보냈다.
《2주 후 토요일과 일요일. 제 일정은 알아서 조정할 테니 그 날 보는 걸로 해요. 장소는 이거 보는 대로 알려주면 됩니다.》
그리고 메시지의 수신인은, 카사마츠 유키오.
덧붙임
샘플의 마지막입니다.
책의 인포는 차후 따로 글을 쓰도록 하겠습니다 :) 대운동회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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